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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1. 최공재 칼럼] 당신은 살아 있습니까?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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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시대에서 Uncontact시대로의 진입
Republic의 시대를 넘어서는 또다른 세상으로의 변화
진보는 80년대에 머무르고 있고, 보수는 60년대에 머물러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도 아니고, 5G시대도 아닌 ‘초(超)의 시대’
문화예술에선 다음 세상이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모르지만...


코로나 이후의 다가올 세상을 보자!
전세계를 뒤흔든 사건들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삶과 생각을 변화시켜왔다.
유럽의 페스트가 창궐한 이후에는 하나님이라는 종교 중심에서 인본주의를 표방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초현실주의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세계질서 역시 Empire 시대에서 Republic의 시대로 변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생존을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우한폐렴(코로라19)의 전세계 강타는 분명 임계점에 다다른 인간 세상에 또다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Contact 시대에서 Uncontact시대로의 진입, Republic의 시대를 넘어서는 또다른 세상으로의 변화는 분명 이미 예정된 것이었고, 그 흐름은 진작부터 시작되었었다.

Uncontact 시대와 Republic of Empire의 시대. 인간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한폐렴 사태 이후 그 속도는 매우 빨라지고 있고, 2020년에 대한민국은 본의 아니게 그 흐름에서 선택당해지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진보가 80년대에 머무르고 있고, 보수는 60년대에 머물러 있다. 지금은 2020년이다.
대한민국이 과거로 회귀하건 말건 세상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대한민국에선 소수의 사람들만이 인지하고 있고, 그것을 주도할 국가는 세계속의 왕따가 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그런 미래에 대처할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미래에 대한, 새롭게 도래할 세상에 대한 시각으로의 변화를 요구당하고 있기에 필자의 이 졸필이 그런 미래를 보는데 단 하나의 밑거름이라도 된다면 이 글을 쓰는 의미는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이제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집에서 컴퓨터로 선생과 함께 수업을 받는 비대면세상의 모습이 익숙해질 것이다. 직접 쇼핑보다는 온라인 쇼핑이 더 활발해지고, 골치 아픈 ‘썸’보다는 온라인상의 원하는 사랑에 익숙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지라 인간과의 연결은 필요한데 인간과의 접촉은 불안하고 상대를 믿을 수 없으니 접촉되지 않으면서도 신뢰감을 쌓고 자신의 욕망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전쟁과 기아, 전염병의 난립은 사람들에게 불안을 조성하고, 그 불안은 살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 욕망을 드러내게 되며,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시발점이 된다. 바로 그런 인간의 모든 욕망들이 트렌드로 변해가는 것,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이가 된 결과물이 바로 Uncontact의 시대일 것이다. 이 Uncontact의 시대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루기로 하자.

이런 역사/문화적인 관점 말고도 정치/경제/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변화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세계질서를 장악하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Republic of Empire’라는 언뜻 보면 이해되지 않은 이 영어단어의 조합은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서양의 새로운 이론 제시이다.

필자도 이 부분에서는 모 석학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 필자가 이해할 수준은 넘어섰다. 어쨌든 이 이론은 서양에서는 꽤 오랜 시간 진전된 연구지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생소한 이론이기에 사상과 이념철학 등을 공부하신 석학분들에게 미룰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필자가 그 이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황당하게도 영화 ‘스타워즈’ 때문이었다.
모 석학의 이 이론에 대해 처음 들을 때 이야기 내내 스타워즈의 세계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우한폐렴 사태로 드러난 중국의 빅브라더는,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함께 곧 다가올 별들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지 않은가? 이 이상 말할 수 없는 문화인의 한계로서 필자의 졸필을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래서 다시 필자는 새로운 화두 하나(Republic of Empire)를 던지는 선에서 멈추고, 문화적으로 이 문제를 다뤄 보기로 한다.

이제 세상은 불안에서 출발된 욕망의 분출로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에 대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비대면 교육은 이제 시작되었지만, 새로운 비즈니스의 장은 이미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거기에 이제는 SF영화에서나 보던 ‘증강현실’의 세상속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것뿐일까? 이제 어쩌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발전을 이뤄온 가장 큰 근본인 ‘인권’마저 버릴 것이다. 지금 현재 그 일은 현실화되고 있다. 우한폐렴 확진자의 동선이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서 개인의 사생활이 침범당하고, 휴대폰과 구글, SNS를 통해 누구라도 나의 지나온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흔적들은 언제라도 공적인 일에 들어갔을 때 개인이 해체되는 무기로 사용된다.

새로운 세상은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적’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그 미래에 자신의 생존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드러날 것이다. 막연하게 어떤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 예상은 하지만, 자신이 쌓아 올리고 안정된 자신의 영역이 새롭게 매트릭스화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렇게 걱정해 봤자 새로운 시대는 도래할 것이고 그런 와중에 수많은 이들이 도태될 것이며, 새로운 세력들이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그 새로운 세상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초현실주의적일 것이라고 보인다. 현실주의적이면서 초현실주의적이라고? 매우 ‘Republic of Empire’스러운 단어의 조합이지 아니한가?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 질서를 파괴하려는 ‘다다이즘’과 ‘낭만주의’에서 시작되었지만, 다다이즘의 파괴적 성격에는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낭만주의보다 더 무의식에 세계에 침착해 들어가며, 인간의 내면과 자아의 통찰과 확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의식의 끝인 꿈과 환상, 신화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시작한다. 파괴적 관점이 아닌 기성관념에 대한 수정작업이 바로 이 ‘초현실주의’에서 시작되며, 문화예술계의 큰 흐름을 이루게 된다. 흔히들 보수진영에서 문화예술계가 다 좌파라고 하는 말들이 얼마나 이 쪽을 모르기에 하는 말인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초현실주의’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1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예술계와 작업 (브르통의 ‘쉬르레알리슴 선언’ 같은…)을 치려 했지만,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거부당했던 이유였다. 예술인들은 그저 개인적으로 자유하고자 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였을 뿐이다. 이 초현실주의자들의 대표적 인물 중 대중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에른스트, 자코메티, 살바도르 달리, 마그리트, 그리고 필자가 제일 사랑하는 ‘마르셀 뒤샹’ 등이 있다. 특히나, 마르셀 뒤샹의 영향은 “돈 버는 게 예술이다’라는 뻔뻔한 예술가, ‘앤디 위홀’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지만, 워홀의 존경한다는 고백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를 혐오했다.

대부분이 화가들이었지만 그것은 시대적 배경의 문제일 뿐이었고, 문화적으로는 ‘로뜨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와 영화에서는 루이 브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등이 등장하며 문화적 확장과 함께 초현실주의는 예술과 사회, 심지어는 비즈니스에까지 확장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 나락 망해가는데 배부른 문화예술 타령이나 하냐고 핀잔을 주신다면 할 말없고, 이론적으로 따지고 들면 할 말은 없지만, 지금의새로운 시대에 대한 것을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작품 하나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바로 여러분들 누구라도 잘 아시는(혹시, 모른다면 저에게 핀잔줄 자격조차 없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하나를 감상해보자. 바로 ‘연인2’라는 작품이며, 연인1이라고 해서 별로 달라진 작품도 아니다.

이 작품을 예전에 봤다면 매우 초현실주의적이지만, 우한폐렴 사태인 현실에서 보면 어떠한가?
실제로 필자는 사무실 근처인 서강대와 신촌 근처에서 마스트를 쓰고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을 많이 목격하고 있다.

이 그림이 더 초현실적인가, 신촌역의 실제 커플이 더 초현실적인가? 필자에겐 작가의 상상력보다 눈 앞에 펼쳐진 그 모습이 더 초현실적이다. 현.재.로선! 초현실주의 작품이지만 이제 이 작품은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낸 듯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이해하시겠는가? 처음에는 매우 생소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세상과 무의식의 도래는 그것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받아들이기 두려운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불안감은 그것이 인간의 무의식에 존재했던 매우 익숙한 이미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현실이 되어버린 미래에 대한 암시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에게 문화적으로 보면 ‘매우 오래된 미래’일 뿐, 그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불안감은 그다지 큰 의미는 없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불안감으로 생성되는 ‘욕망의 분출’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이다.

그래도 인간은 전진한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발전해 왔다. 그렇게 지구의 주인이 된 것이 인간이다. 전염병이든, 전쟁이든 뭐든 인간은 변화할 때 매우 빠르게 진화하며 발전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욕망의 분출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초현실주의’는 새로운 형태로 이미 인간의 생활과 무의식에 스며들었고, 그것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SK텔레콤도 광고하지 않는가?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도 아니고, 5G시대도 아닌 ‘초(超)의 시대’라고……‘초(超)현실주의’는 그렇게 매우 현실적이 되었다.
우리가 이제 그걸 받아 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

필자가 문화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개인으로서 보수진영에 제발 문화를 공부하시고 이해하시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수 백 가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미 문화예술계에선 하나의 생각(무의식 마저도)을 현실화하며 그것을 세상과 접목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것은 정치나 사회적 개념을 넘어 무의식의 현실화 과정을 거치며, 인간들에게 매우 미래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앤디 워홀의 예술의 상업화 개념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지금 세상의 무의식을 장악한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후로 무의식에 존재했던 인간의 미래를 보여주는 형태로 진화했고, 그것은 공산주의도 거부했고 그 어떤 기존의 시스템도 거부하면서 인간이 무의식에서 꿈꿨던 바로 그 ‘꿈’을 현실화했다. 그게 그림이건, 詩건, 음악이건, 소설이건, 영화건 간에 말이다.
단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과 욕망의 분출에 따라 다음 세상이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문화예술에선 둘 다 매우 현실적인 초현실주의의 모습으로 보여줬다. ‘블레이드러너’의 시대로 진입할지, ‘매트릭스’의 시대로 진입할지, ‘스타워즈’의 시대로 진입할지는 모른다. 다만, 문화예술이 만들어 보여주었던 ‘아주 오래된 미래’는 오래 전부터 여러분들께 말한다.

어쨌든 인류는 발전합니다. 그런 새로운 시대에 당신은……

“살아 있습니까?”
 
*이 칼럼은 대구에 사시는 표병관 회장의 ‘코로나19 이후,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저자-김용섭)’란 책에 대한 리뷰 글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영화감독/ (주) 작당들 대표)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